작성일 : 04-11-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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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서협진센터
 조회 :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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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한 어머니가 중학생 아들을 데리고 나의 진료실을 찾아왔다. 학교에서 소위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학생은 지능이 조금 모자라고 심하게 내향적인 아이였다. 학업 성적도 뒤처지고,친구도 별로 사귀지 못하고,제 앞가림을 제대로 못하는 학생이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이상한 점이 눈에 뜨이기 시작했다. 적던 말수가 더욱 적어지고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생기고 멍이 든 것이 보이기도 했다. 이유를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숨기려 하는 태도를 보였다.
처음에는 무심하게 넘겼는데 같은 일이 반복되어 알아본즉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반 아이들 몇 명이 떼를 지어 놀리고 욕하고 때리고 심지어 목을 조르기도 하는 등의 폭행을 매일 일삼아왔다는 것이다. 당연히 부모는 학교 선생님을 찾아가 항의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선생님도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아이들이 그럴 수도 있지 않으냐,문제를 더 확대해서 좋을 것이 없다”는 선생님의 말이었다.
집단 따돌림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지만 서구 사회에서도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부터였고,우리나라에서는 불과 6∼7년 전부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근래 영국에서 발표된 것을 보면 초·중학생의 27%가,그리고 고등학생의 10%가 집단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또 초·중학생의 10%,고등학생의 4%가 일주일에 한번 이상 집단 따돌림을 당하였으나 그러한 사실은 대개 학부모나 교사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에 조사한 것을 보면 48.1%의 학생들이 친구를 따돌린 적이 있고,24.2%의 학생들이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집단 따돌림은 일종의 아동 또는 청소년 학대에 해당된다. 그래서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은 당혹감,수치감,두려움,자신감의 상실 등의 정신적 고통과 두통,구토,어지러움 등 여러 가지의 신체적 고통을 겪게 된다. 그리하여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고 등교거부,가족 내에서의 폭력 등 여러 행동문제로 발전하게 된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학교에서의 왕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피해 학생이 경험하게 되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도 심각한 것이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왕따로 인하여 청소년 교육이 반교육적이고 반사회적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청소년 교육 현장에서 ‘정의감을 심어주는 교육’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왕따 당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힘이 없고,나약하고,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결함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이들은 떳떳하게 자기 권리를 주장하거나 자기 방어를 할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을 힘이 세고 똑똑하고 소위 잘난 아이들이,그것도 떼를 지어서 괴롭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사회적인 정의에 정반대 되는 행동이다.
학교에서는 청소년들에게 무엇이 정의로운 행동인가를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결함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가장 비열한 짓이고,그런 사람일수록 도와주고 보호해주어야 하는 것이 바로 정의임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그 학생들이 성장해서 사회로 나왔을 때에 정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권력을 가진 자가 힘없는 자를 무시하고 억압하고 고통을 주는 지금의 병리현상이 고쳐지기를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것이 참교육이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왕따 당하는 아이가 있어도 선생님들은 애써 외면하려 한다. 학교 당국에서는 문제의 노출을 꺼려 가급적 덮어두려고 한다. 교육부를 비롯한 정부 당국에서는 교육제도니 입시제도니 하는 데에만 관심을 갖지 정의로운 사람을 만들어내는 교육에는 관심이 없다. 교사단체에서도 참교육을 입으로만 말하고 행정이나 정치적인 이슈에만 매달리고 있다. ‘나보다 약한 사람 도와주는 사람이 되자’는 정의로운 사람 만들기 교육에는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장환일(경희대의대 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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